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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 추천 책] 박사가 사랑한 수식



1. 신나게 휴가지로 떠난 기차 안에서 문득 두 가지를 잊고 온 것이 생각났다. 첫 번째는 선글라스, 그리고 나머지는 책이었다. 사실, 책을 두고 온 것은 선글라스를 두고 온 것보다는 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책을 가져간다고 해도 읽을지 안 읽을지는 미지수이고 오히려 무겁기만 할 수도 있으니, 어쩌면 두고 온 것이 현명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휴가지 근처의 지인 집에 들어섰을 때, 내 마음을 이끄는 책 한 권을 빌려달라고 꺼내 들게 되었다. 아무래도 피서지에 책이 없는 것은 영 심심한 마음이었다.


2. 그렇게 만난 책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2004)"이란 책이었다. 지극히 일본 소설 느낌의 제목이라고 생각하면서 왠지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읽었던 "암호의 세계"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뭔가 공대생의 마음을 콩닥거리게 하는 매력이 있는 제목이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주인공은 박사와 그의 파출부이다. 박사는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후 기억이 80분만 지속하게 되었다. 이런 설정은 요새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지만, 파출부가 그와의 일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는 점이 새로운 재미가 되었다. 


 박사는 80분의 기억을 붙잡기 위해서 매일 입는 양복 곳곳에 메모지를 붙이고 다닌다. 파출부를 기억하기 위해 유치원생 솜씨로 파출부 얼굴을 그려놓은 메모, 파출부의 아들 루트를 써놓은 메모,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의 기억은 80분이다."라는 메모까지... 박사가 움직일 때면 사박사박 메모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이 모든 이야기가 휴가지의 나에게는 굉장히 진실하게 느껴졌다. 해변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고즈넉하지만, 관리상태는 엉망인 박사의 집 초인종을 매일 아침 누르는 파출부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휴가지의 새로운 환경과 아침마다 나를 기억 못 하는 박사를 대하는 파출부의 마음에 어떤 접점이라는 게 있었던 걸까?

 박사와 파출부, 그리고 그녀의 아들 루트는 많은 경험을 함께 나눈다. 물론 그 추억은 파출부와 루트에게만 간직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박사는 기억하지 못할 추억들 뿐이지만, 그들과 친구임을 늘 새롭게 자각했다. 사회와 격리되어 자신의 세계(수학)에만 빠져있는 박사가 유식하거나 부유하지도 않은 일반인 혹은 일반인보다 더 힘든 미혼모와 그의 아들과 허물없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미망인의 질투도 잠시 등장하지만, 이들의 진정한 우정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기에 언급하지 않겠다.


3. 박사는 수학을 "실생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에 더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와 닿는 이야기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을 계산하게 되었다. 그 계산은 나에게 가장 이롭거나 해로운 것,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 그리고 나를 빛내줄 재산들의 가치에 대한 계산이었다. 이러한 계산을 "수학"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수학은 정말 순수학문일 뿐이다. 여타 다른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수학 역시 순수학문이기 때문에 고귀하고 애정을 다해 세대에서 세대로 지켜져 가고 발전 돼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여타 다른 공학과의 차이도 그 때문일 것이리라. 내가 공학도여서 그 순수함을 잃은 건지, 아니면 사회에서의 생존이라는 타이틀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박사의 순수함과 그의 친구들이 보여준 순수한 우정과 그 가운데에 존재하는 고귀한 순수학문인 수학의 이야기를 통해 돌아보게 되었다. 수학이야기지만 머리아프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휴가지 추천 책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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