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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고 싶을 때 읽는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개정)

저자
박완서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05-09-1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의 대표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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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식한 이야기지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이 떠오르면서 자연스레 이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을 떠나서 비슷한 제목은 용서할 수 없다는 무식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전자 도서관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전자 도서관 책을 무료로 볼 수 있게 해주어서 들뜬 마음으로 전자 도서관을 이용해 보았는데 막상 읽을만한 책은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어차피 공짜니까, 그리고 요새 맘에 드는 책도 통 못 만났으니까... 이 책은 적어도 베스트 셀러였으니까... 이런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떠오르는 내 기억은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들었던 6.25 이야기였다. 굉장히 가부장적인 우리 친가에서 딸인 나와 내 동생은 늘 찬 밥 신세였다. 오죽하면 우리가 국민학교(그 당시 국민학교 였다.)를 다닐 때까지 할아버지가 단 한번도 우리를 안아준 적이 없는 것이 한이 된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왜 같이 사는 손녀들은 안아주지도 않으시냐!"며 불만을 터트리셨고, 결국 일주일에 한번 할아버지 문안 인사를 드릴 때마다 할아버지께서 형식적으로 포옹을 해 주실 정도였다. 그래서 6년이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음에도 그 분들에 대한 애틋한 기억은 거의 없는데 유일하게 내가 훈훈하게 기억하는 이야기가 할머니의 6.25 전쟁 때 이야기였다. 학교에서 6.25 전쟁이라는 것을 배운 국민학생 시절, 모임 때문에 귀가가 늦어지시는 부모님 때문에 할머니가 2층 우리집으로 올라와 나랑 내 동생 잠자리를 봐주셨다. (당시 우리 자매는 너무 겁이 많은 울보 자매였다.) 엄마 역시 할머니 눈치를 보느라 변변한 외출 한번 하신 적 없었던 시절이라, 부모님의 늦은 귀가는 우리 자매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눈물 글썽글썽 하던 찰라에 만난 할머니는 너무 반가웠다. 우리 자매의 상태를 본 할머니는 우리 이부자리에 함께 들어와 누우셨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6.25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 당시 할머니는 전라도의 섬에 계셨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건네 들은 6.25 전쟁 이야기는 참 심심했다. 군인들이 온다는 소리가 들려서 할아버지가 뒷산으로 도망 가야한다고 할머니를 고래고래 부르는 데, 할머니는 당시 나물들을 따다 말리고 계셨다고 했다.(그게 고추였는지, 나물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이 먹을 것들 놔두고 절대 못간다고 할머니는 오기를 부리셨고, 결국 할아버지만 혼자 올라가셨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군인들은 조용히 지나갔다는... 그런 이야기 였던 것 같다. (아니면 오지 않았거나...) 내가 생각하는 피 튀기고 사방이 폭탄 소리가 나는 그런 전쟁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때 내가 생각한 것은 실제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영화와 같은 그 어떤 것이 아니라, 그냥 삶의 일부였고, 내가 마주쳐야만 하는 현실이었다는 사실이 꽤나 담담한 것이었다. 만약 내가 6.25를 겪은 세대라면 6.25 이야기가 나오면 설레발 치며 있지도 않은 영웅담을 만들어낼 것 같은데, 막상 그 시대를 사신 분에게는 그냥 특별할 것 없는, 그러나 가슴 아픈 과거 이야기였다. 


 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그런 개인의 이야기다. 단지 그 배경이 우리나라가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라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80년대에 태어난 나의 어린 시절 모습과도 많이 비슷한 상황이나 아이의 생각은 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 너 어디 살지? 느이 집 어디야? 넌 지금 길을 잃은 거다."

  

  그러면 난 현저동 주소를 대야 했다. 반대로


  " 느이 집 어디냐? 넌 지금 선생님 앞에서 시험을 치고 있는 거야."


  이렇게 물어보면 사직동의 가짜 주소를 대야 했다. 엄마는 내가 행여나 이 두 개의 주소를 헷갈릴까봐 전전긍긍했다. 나는 문제 없이 안 헷갈릴 텐데도 엄마가 자꾸 그러니까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헷갈릴 것처럼 조마조마해지곤 했다.


 사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이른 7살 때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 당시 7살이어도 음력 설 전에 태어난 아이들, 그러니까 보통 2월생까지는 7살이어도 입학을 할 수가 있었는데 나는 생일이 4월이어서 전혀 해당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를 일찍 입학시켰다. 그리고 입학하기 전부터 나에게 끊임없이 교육을 시키셨다.


 " 너 생일이 몇 월이라구?"


 그러면 나는 입학할 때 바꿔치기한 생일인 "2월이요."라고 대답을 해야했다. 국민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도 4월에 태어났는데 2월이 생일이라고 속여서 입학한 것에 대해 걸릴까봐 늘 마음을 졸여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담임 선생님들이 주민등록번호만 봐도 금방 생일을 알아챌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역사적 순간에 대한 기록 또한 흥미로웠다. 


  우리가 일본이 망했다는 걸 안 것은 느닷없이 한 떼의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우리 집으로 쳐들어오고 나서였다. 그들은 저희들끼리만 희희낙락 우쭐대면서 우지끈뚝딱 우리 집 세간이며 문짝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 중략 ... 그러니까 박적골에선 우리 집이 친일파 집으로 몰려 분풀이를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 중략 ... 

  그날 우리 집이 당한 것은 깊은 원한이 사무친 조직적인 폭력이라기보다는 갑자기 억압이 풀리면서 억눌렸던 힘들이 그렇게 분출한 일종의 축제 행사였던 듯하다. 몇 마을을 더 돌고 나서 제풀에 진정이 되었고 망가진 문짝과 세간살이들이 다시 몸 담고 살 수 있을 만큼 수습되기까지는 마을 사람들의 위로와 협조가 컸다. 청년단이니 자위대니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정치적인 색깔이 사람들의 심성을 혼란스럽게 하기 전의 일이다.


 사실, 일제시대 때 공무원이었다면 당연히 친일파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가 적혀있다. 일제시대에 공무원을 하면서도 창씨개명은 하지않는, 나름의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 팔아먹는 매국놈이라는 것도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작가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소녀의 관점에서 글을 옮기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생생하게 그 시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할머의 6.25 전쟁이, 말리고 있는 나물을 지키는 것보다 위급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시대를 겪은 사람이 내린 판단은 그 시대를 공유하지 않은 우리가 감히 뭐라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듯 했다.


 지금의 대한민국과는 너무 다른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이야기, 개성과 송도가 지금의 부산이나 목포만큼 친숙했던 시절의 이야기. 누구에게나 굉장한 몰입력을 선사해 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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