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지 않은 책]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하야마 아마리)
1. 내 나이 딱 스물아홉, 고등학교 다닐 때 친한 친구 중에서 서른이 되면 꼭 죽을거라고 말하던 녀석이 있었다. 현재 그 녀석의 나이는 서른. 녀석은 아직 잘 살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그 녀석이 떠올랐다. 사실 지금 연락하고 지내지는 않지만 녀석의 핸드폰 번호를 아직 가지고 있고, 그 녀석의 카카오톡에는 토실토실 살찐 녀석의 얼굴이 있으니 아직 무사하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2. 이 여자는 왜 죽고 싶었던 것일까. 궁금했다. 질풍노도의 10대 때를 제외하면 단 한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했다. 이 이야기를 가볍게 정리하자면 '아무런 열정도 설렘도 없는' 사람이 스물아홉살 생일을 기점으로 자신의 D-day(죽을 날)를 결정해 놓았고, '어차피 죽을 건데...' 라는 마인드로 열심히 살았더니 인생별거 아니더라. 라는 조금은 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뻔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읽게 된 것은 아마리의 이야기가 전혀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취업, 외모, 그저그런 꿈 없는 삶, 이 모든 것이 바로 지난 날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3. 그러고보니 요즘 책 선택이 참 절묘하다. 빅 픽처에서 스물아홉 생일....로 이어지는 이 리듬이 뭔가 운명적인 듯 하다. 빅 픽처 역시 자신의 삶을 버림으로써 시작되는 이야기이고, 스물아홉 생일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른 점 한가지는 빅 픽처는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진 사람이 그것을 포기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였지만 스물아홉 생일...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맘 편하게 자신의 인생을 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악착같이 D-day 직전의 삶에 돌진했던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차이는 사실 굉장히 큰 차이였다. 그러면서 묘하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 p.168-
빅 픽처의 벤과 같이 모든 것(꿈을 제외한)을 다 가진 삶이든, 아마리처럼 아무것도 없는 삶이든 그 상태 그대로의 삶이 곧 "안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 상태에서 머무르는 안정적인 생활(변화가 없는 생활)을 추구하면 결국 평생 그 삶을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리는 외친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몽상은 그저 몽상일 뿐이었는데, 그런 내가 최초로 몸을 움직였다. 발가락부터 조금씩 움직여 본 것이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다시 불을 켜고 수첩을 펼쳤다. 그리고 앞으로 1년 뒤, 인생의 정점까지 가는 동안 나의 신조처럼 지키고 싶은 한마디를 적었다.
'기적을 바란다면 발가락부터 움직여 보자.'
-p.62-
아주 공감가는 대목이었다. 내 인생 역시 조금 움직이는 데에서 늘 큰 변화가 시작되었으니까.
가끔 그 조금의 움직임이 내게 얼마나 큰 변화를 줄지가 두려워 결국 안정적인 현재를 택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나는 변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게 좋든 나쁘든 서른을 5개월 앞둔 지금의 내 인생은 그것들을 제외하면 무엇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버렸다. 안정적이지 않은 생활, 발가락이라도 움직이는 나의 행동들은 어떻게든 나를 발전시킨다.
머리가 조금 더 커 버리더라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문구였다.
4. 엉망이 될 것 같았던 인생의 순간이 있었다. 너무너무너무 이미 엉망이라 나머지 나의 삶도 엉망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 심호흡 한번하고 발가락이라도 움직이려 노력했던 나의 과거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표하고 싶어졌다.
아마리는 그 방법을 깨닫기까지 정말 많이 노력해야 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몇 번의 가슴아픔으로 저절로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쉽게 내게 그 진리를 알려준 운명에게도 감사했다.
5. 뭔가 굉장한 스토리가 있다거나, 깨달음이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10대 후반의 소녀들이 시시껄렁하게 읽을만한 책도 아니다. 무겁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 없이 가볍지 않은 소설. 덥고 나른한 오후, 시원한 선풍기 앞에서 읽기에 딱 좋은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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